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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눅스(Linux) 29주년 – 그 역사

by 김형백

2020년 8월 25일로 오픈소스 운영체제(OS) 리눅스가 탄생 29돌을 맞았습니다. 미국 Zdnet이 그동안의 리눅스(Linux) 역사를 정리했네요. 이를 한글 ZDnet에서 기사화했는데 제 커멘트와 함께 재미있게 보시기 바랍니다. ^^
ZDnet Korea 원문

오늘날과 같은 리눅스의 대성공은 창시자인 리누스 토발즈조차 예상치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9년 동안 리눅스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미국 지디넷이 정리했다.

리누스 토발즈조차 리눅스의 정확한 탄생 날짜를 특정하지 못한다. 후보일자 4개로 압축되는 리눅스의 생일은 여전히 논쟁거리지만, 대개 1991년 8월25일 리누스 토발즈가 미닉스 뉴스그룹에 리눅스 커널 0.01 버전을 소개한 시점을 탄생일로 삼는다.

■ 1991년 8월 25일

당시 핀란드 헬싱키대학 대학원생이었던 리누스 토발즈는 미닉스 뉴스그룹 ‘comp.os.minix’에 글을 게시했다. 이 글은 ‘미닉스(minix)에서 가장 보고 싶은 것을 무엇입니까?’란 제목이었다. 토발즈는 “386(486) AT 클론을 위한 (무료) 운영체제를 만들고 있다”며 “단지 취미이지, GNU처럼 거대하거나, 전문적이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그룹"이라는 용어가 생소하시죠? 아직 WWW이 활성화되기 전이라 인터넷에는 Usenet, Gopher 로 불리는 텍스트 기반의 정보 소통 공간이 있었답니다. 지금은 거의 활용되지 않고 있지만요 ^^ Usenet이 바로 뉴스그룹입니다.

그는 “4월부터 시작했고 거의 다 준비 됐다”고 덧붙였다.

미닉스는 앤드류 타넨바움 교수가 만든 교육용 유닉스였다. 리누스 토발즈는 미닉스를 쓰던 중 제한된 기능에 불편을 느껴 새로운 OS 커널을 만들었다.

리누스 토발즈의 리눅스 0.01 공개 내용을 담은 글

■ 1992년 리눅스를 둘러싼 첫 논쟁

당시 OS와 그 설계 분야의 저명인사이자 미닉스의 창조자였던 앤드류 타넨바움 교수는 1992년 1월 29일 ‘리눅스는 구식이다’란 제목의 글을 올리며 첫번째 리눅스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이 글은 이후 OS 커널 방식을 놓고 벌인 ‘타넨바움-토발즈 논쟁’의 시발점이다.

미닉스 커뮤니티의 관심사가 리눅스로 넘어가는 것을 보던 타넨바움 교수는 연초에 올린 글을 통해 마이크로커널 대신 모노리식커널 방식을 택한 리눅스의 한계를 지적했다. 또 OS를 386 환경에서만 돌아가도록 설계한 이식성의 한계도 지적했다.

타넨바움 교수는 MS-DOS, VMS 같은 예전의 OS 대부분이 커널 내부에서 모든 작업을 처리하는 모노리식 커널이었고, 그 대안으로 나온 게 마이크로커널이며 모노리식 시스템보다 훨씬 빠른 성능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그는 “모노리식 방식의 시스템인 리눅스는 1970년대로 되돌리는 것”이며 “이는 C 프로그램을 베이직(BASIC)에서 재작성하는 것과 같고, 1991년 모노리식 시스템을 만든다는 건 정말로 시시한 아이디어”라고 밝혔다.

앤드류 타넨바움 교수의 ‘리눅스는 구식’ 글

이에 리누스 토발즈는 “만약 지난 봄에 GNU커널이 준비됐다면, 나는 내 프로젝트 시작부터 괴롭지 않았을 것”이라며 “진실은 그게 없었고 지금도 없다는 것이며, 리눅스는 지금 사용가능하다는 점에서 승리했다”고 응수했다.

이식성 한계에 대해선 성능을 위해 이식성을 포기한 것이며, 리눅스가 표준에 따라 설계된 오픈소스 SW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고쳐 다른 하드웨어로 이식할 수 있어 큰 문제가 아니라고 밝혔다.

타넨바움 교수는 토발즈에게 “당신이 내 학생이 아닌 게 다행”이라며 “그런 설계는 아마 좋은 학점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답장했다. 또 “1991년에 386에서만 돌아가는 새 OS를 만드는 건 F학점을 받는 일”이라며 “다만 기말 시험을 잘 보면 과목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1993년 슬랙웨어 리눅스

초기에 몇몇 리눅스 배포판이 등장했다. MCC, 이그드라실리눅스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패트릭 볼커딩의 ‘슬랙웨어’가 처음으로 대중성을 확보한 배포판이다.

슬랙웨어 리눅스는 지금도 사용되며, 지금도 업데이트된다.

슬랙웨어 리눅스

■ 1993년 데비안의 시작

1993년 가장 인기있는 커뮤니티 데비안 리눅스가 시작됐다. 현재 데비안 리눅스는 민트, 우분투 등 기타 수많은 리눅스 배포판의 토대가 됐다.

데비안 리눅스 시작화면

■ 1994년 레드햇 리눅스 탄생

1994년 마크 유잉이 레드햇 리눅스를 만들었다. 밥 영이 유잉의 회사를 인수해 자신의 회사에 합병한 뒤 ‘레드햇’을 설립했다. 레드햇은 오늘날 가장 큰 성공을 거둔 리눅스 회사다.

레드햇 리눅스 배포판

■ 1995년 리눅스 상업 행사의 시작

1995년 리눅스 진영이 첫번째 상업 행사인 ‘리눅스 엑스포’를 열었다.

리누스 토발즈는 리눅스 자체로는 어떤 상업적 이익도 취하지 않았지만, 리눅스를 이용한 여러 제품과 사업모델이 등장했고, 판매자와 구매자가 한데 모여 사업을 벌이는 상업적 장이 열린 것이다.

리눅스 엑스포 모습

■ 1996년 데스크톱 리눅스의 시작

리눅스 데스크톱 인터페이스인 KDE가 1995년 시작됐다. 마티아스 에트리치가 시작한 이 프로젝트는 데스크톱 컴퓨터에서 리눅스를 쉽게 사용하고자 하는 개인적 이유로 만들어졌다.

KDE에서 ‘K’는 ‘cool’의 슬랭인 ‘Kool’의 의미다. 유닉스의 ‘범용데스크톱환경(CDE)에서 따온 것이기도 하다.

KDE 리눅스 데스크톱 인터페이스 초기 모습

■ 1996년 수세(SUSE) 등장

KDE의 등장과 같은 해에 진정한 의미의 수세(SUSE) 리눅스 배포판이 처음으로 나왔다. 원래 수세 리눅스는 슬랙웨어를 만든 배트릭 볼커딩과 그의 동료들이 슬랙웨어를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그러다 새롭게 개발된 배포판이 1996년 수세 리눅스 4.2란 이름으로 출시됐는데, 이 배포판은 슬랙웨어와 완전히 별개의 소프트웨어였다.

수세 리눅스는 이후 레드햇 리눅스의 여러 요소를 받아들이며 발전했다. 수세 리눅스는 유럽 시장에서 강세를 보였으며, 오늘날 주요 리눅스 배포판 중 하나이자 클라우드 인프라 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수세 리눅스

■ 1997년 그놈(GNOME)

1997년 미구엘 데 이카자와 페데리코 메나가 새로운 리눅스 데스크톱을 만들겠다며 ‘그놈(GNOME)’을 시작했다.

그놈은 오늘날 KDE와 함께 데스크톱용 리눅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됐다.

GNOME 리눅스 데스크톱 인터페이스 초기 모습

■ 1998년. 마이크로소프트의 ‘할로윈 메모’

1998년 마이크로소프트가 리눅스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리눅스와 오픈소스의 초기 리더였던 에릭 S. 레이몬드가 ‘할로윈 문서’를 공개했고, 이 문서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리눅스를 적으로 심각하게 인식하며 오픈소스와 리눅스 반대 캠페인을 공식적으로 조직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보여줬다.

10년 넘게 지난 후에야 마이크로소프트는 태도를 바꿨다.

마이크로소프트의 할로윈 메모
뒤에 내용이 나오지만 MS는 가상화 기술이 본격적으로 시장을 넓혀갈 때까지만 하더라도 리눅스에 적대적인 자세를 취했습니다. FreeBSD 기반의 MAC용 MS 오피스 제품군은 출시를 했지만 리눅스용은 아직도 출시하지 않았죠. 이제 서버 뿐만 아니라 데스크톱에서도 무시할 수 없는 점유율을 가지게 되었고, 윈도 서버 가상화 기능을 이용해 리눅스를 쉽게 설치할 수 있는 단계가 되자 울며겨자먹기로 리눅스에 호의적인 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 1999년 코렐 리눅스 데스크톱

주류 리눅스 데스크톱을 이룬 코렐이 1999년 배포됐다. 코렐은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후 등장한 우분투 같은 데스크톱용 리눅스 배포판의 경로를 설정하는 역할을 했다.

코렐 리눅스 데스크톱 배포판의 실행화면

■ 1999년 리눅스와 윈도의 서버 전쟁

1999년 리눅스가 파일서버 영역의 벤치마크에서 윈도NT에 첫 승리를 거뒀다. 서버 OS를 둘러싼 리눅스와 윈도 간 전쟁이 시작됐다.

결과적으로 리눅스는 윈도에 최종 승리를 거뒀고, 오늘날 리눅스는 웹서버와 클라우드의 OS를 독점하고 있다.

리눅스와 윈도

■ 2000년 IBM의 10억달러 투자

2000년. IBM은  1년간 10억달러를 리눅스에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IBM 역사상 최고의 투자였다는 게 증명됐다. IBM의 리눅스 투자 선언으로 엔터프라이즈 시장에서 리눅스 사용 분위기가 조성됐다.

IBM은 2001년까지 10억달러를 리눅스에 투자하겠다고 선언했다.

■ 2001년 리눅스 2.4 배포

수차례의 연기 끝에 2001년 리눅스2.4가 배포됐다. 이 버전으로 리눅스는 당시 서버용 OS계 거물이던 솔라리스, 기타 고성능 서버OS와 경쟁할 수준에 이르렀다.

제가 실리콘밸리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할 때의 기억이 납니다. 이때 리눅스 커널 2.4의 배포야말로 리눅스가 완전한 엔터프라이즈용 운영체제로 자리를 잡게된 시금석이 되었다고 봅니다. 이 당시 서버 HW(Whitebox라고 하죠.)에 레드랫 리눅스를 설치하고 비싼 가격에 납품해서 돈을 번 기업들도 많았을 정도입니다. 저도 리눅스 2.4 기반에서 Embedded Linux를 만들어서 NAS 솔루션을 개발했던 기억이 나네요 ㅎㅎ
리눅스 펭귄

■ 2003년 리눅스 전쟁의 시작

2003년 SCO유닉스와 칼데라리눅스의 합병으로 탄생한 SCO그룹이 리눅스 진영을 상대로 지적재산권 소송을 제기했다. SCO그룹의 유닉스 코드 80만줄 이상을 리눅스가 모방했다며 IBM과 레드햇 등에 소송을 건 것이다.

이후 SCO그룹을 비롯한 몇몇 회사가 리눅스를 유닉스의 복제판이라 주장하며 입증하려 시도했다.

SCO그룹의 시도는 실패했지만, 리눅스 저작권에 대한 부정적 정보는 수년 동안 리눅스의 상업적 수용을 방해했다.

SCO그룹은 리눅스를 유닉스 복제판이라며 저작권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 2004년 우분투 창설

우분투가 2004년 등장했다. 데비안 리눅스 상에 구축된 우분투는 데스크톱용 리눅스 배포판 중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오늘날 클라우드 환경에서의 리눅스 배포판 가운데서도 큰 비중을 차지한다.

우분투 배포판 실행화면

우분투(ubuntu)는 사람들간의 관계와 헌신에 중점을 둔 윤리 사상이다. 이 말은 남아프리카의 반투어에서 유래된 말로, 아프리카의 전통적 사상이며 평화운동의 사상적 뿌리이다.

■ 2004년 리눅스의 슈퍼컴퓨터 장악

2004년은 세계 최고 성능급의 슈퍼컴퓨터 절반 이상이 리눅스를 OS로 채택한 해로 기록됐다. 2017년에 이르러 모든 슈퍼컴퓨터가 리눅스를 사용했다.

텐허 슈퍼컴퓨터

■ 2005년 리눅스가 대형 사업이 되다

2005년 비즈니스위크 표지에 리누스 토발즈가 등장했다. 표지에 달린 표제는 ‘LINUX Inc.’. 이로써 리눅스가 주요 비즈니스란 점에 대한 의구심이 완전히 무너졌다. 오늘날 리눅스에서 실행되지 않는 주요 사업을 찾는게 더 어려운 일이다.

2005년 비즈니스위크 표지. 리누스 토발즈와 펭귄이 ‘LINUX Inc.’란 표제와 함께 나왔다.

■ 2007년 안드로이드 등장

구글과 여러 하드웨어 제조사를 포함하는 ‘오픈핸드셋얼라이언스(OHA)’가 ‘안드로이드’ OS를 발표했다. 수십억 대 이상의 스마트폰에서 돌아가는 그 안드로이드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
구글이 관여하기 전에 안드로이드를 삼성에 팔려고 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죠. 삼성의 안목이 부족했다고 비판을 하곤 했었는데... 과연 그때 삼성이 안드로이드를 샀으면 지금 수준의 스마트폰 플랫폼이 만들어졌을까요? ㅎㅎ 삼성이 소프트웨어 개발 조직(MSC)을 별도로 꾸린지도 오래되었는데 지금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 2008년 주식시장의 리눅스 채택

2008년 뉴욕증시거래소가 핵심 OS를 리눅스로 교체했다. 이후 세계의 주요 주식거래소 대부분이 리눅스를 채택했다.

뉴욕증권거래소

■ 2011년 IBM 왓슨이 제퍼디에서 승리하다

IBM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컴퓨터 ‘왓슨’이 제퍼디 퀴즈쇼에서 인간에게 승리했다. IBM 왓슨의 OS는 메인프레임이 아니라 리눅스였다. IBM 왓슨은 전문가 시스템의 새 표준을 정립했다.

IBM 왓슨이 미국 제퍼디 퀴즈쇼에서 인간에게 승리했다.

■ 2011년 크롬북의 성장

구글이 첫 크롬북 CR-48를 출시한 게 2011년이다. 크롬OS는 젠투리눅스(Gentoo-Linux)’에 기반한 OS다. 2015년 크롬북은 윈도 노트북 판매량을 앞질렀다.

크롬북 CR-48

■ 2012년 리눅스에서 작동하는 클라우드

전세계 기업과 단체의 IT시스템이 자체 데이터센터와 서버에서 클라우드 컴퓨팅으로 본격적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2019년까지 마이크로소프트 애저 상의 가상머신(VM) 중 절반 이상이 리눅스를 사용한다.

■ 2012년 레드햇 매출 10억달러 첫 달성

2012년 레드햇이 연간매출 10억달러를 처음으로 달성했다. 오픈소스가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레드햇은 2016년 처음으로 20억달러 규모의 리눅스 사업을 벌이는 사업자가 된다.

레드햇은 2012년 첫 10억달러 연매출을 달성했다.

■ 2014년 “마이크로소프트는 리눅스를 사랑한다”

새롭게 마이크로소프트의 수장을 맡은 사티아 나델라 CEO가 “마이크로소프트는 리눅스를 사랑한다”고 공개석상에서 발언했다. 과거 리눅스를 적으로 돌리고 안티오픈소스 운동의 선봉에 섰던 마이크로소프트의 완전한 변신 선언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리눅스와 오픈소스 소프트웨어 진영의 충실한 우군을 자처하고 있으며, 클라우드 인프라와 내부용 시스템에서 리눅스와 오픈소스를 활발히 사용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리눅스를 사랑한다고 발언하는 사티아 나델라 CEO

■ 2018년 마이크로소프트 특허가 오픈소스에 기부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픈소스 특허 컨소시엄인 ‘오픈인벤션네트워크’에 참여하면서, 6만건에 달하는 자사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기부했다.

오픈인벤션네트워크는 오늘날 리눅스 특허 전체를 방어하는 조직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OIN에 특허를 기부했다.

■ 2019년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10용 리눅스를 내놓다

마이크로소프트는 2019년 윈도 OS를 위한 자체 리눅스를 선보였다. 이는 리눅스용 윈도서브시스템(WSL) 2.0으로 불린다. WSL 2.0은 윈도10 안에 마이크로소프트에서 직접 최적화한 리눅스 커널을 포함하는 것이다.

WSL 2.0을 통해 리눅스가 윈도 속에서 구동될 수 있게 됐다.

윈도10에서 구동되는 우분투14.04

■ 2019년 IBM, 레드햇 인수

2019년 레드햇이 IBM에 인수됐다. 거래 규모는 340억달러. 역사상 최대 규모의 SW 인수합병 거래다. 이는 리눅스가 IT기술 세계를 독점한다는 사실을 명확히 보여준다.

■ 2020년 모든 길은 리눅스로 통한다

전세계 클라우드 시장은 연간 1천억달러 규모이상에 달한다. 그 90%가 리눅스를 사용한다. 이제 ‘클라우드로 가는 모든 길은 리눅스로’ 통하고 있다.

클라우드로 가는 모든 길은 리눅스로 통한다.
국내에서도 대부분 서버 운영체제는 리눅스(Linux)로 대부분 전환되었습니다. 일부 윈도 서버에서 개발된 특정 애플리케이션을 제외하고는 공공 분야에서도 90% 이상 리눅스가 사용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리눅스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아주 반가운 결과임은 분명합니다. 다만 국내에서는 데스크톱 운영체제로 사용되는 경우는 거의 드문데, 이의 활성화도 기대해 봅니다! * 데스크톱용 리눅스 한번 강의를 진행해볼까 싶은 생각이 드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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